About Text


1992년 4월 4일
미국 콜라라도 보울더에서
마샬 비안 서머즈에게
계시되었다

이 본문에 관하여


What you are reading in this text is the transcription of the original voice of the Angelic Assembly as it spoke through the Messenger Marshall Vian Summers.

Here, the original communication of God, which exists beyond words, is translated into human language and understanding by the Angelic Assembly who watch over the world. The Assembly then delivers God’s Message through the Messenger, whereafter it is transcribed and made available to you and to all people.

In this remarkable process, the Voice of Revelation is speaking anew. The Word and the Sound are in the world. May you be the recipient of this gift of Revelation and may you be open to receive its unique Message for you and for your life.


제5편 > 큰공동체 지혜 2 > 제8장

문제를 해결하고 앎과 결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큰공동체 앎길을 배워 삶에 그대로 적용해보는 일 가운데 큰 부분을 차지한다. 앎은 어느 한 부분도 빠뜨리는 일 없이 두루 적용되므로 당신이 앎길을 계속 공부하다 보면, 앎이 당신과 항상 함께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앎은 고요하지만, 당신은 소란스럽다. 당신이 고요 속에서 이 앎을 체험했을 때, 앎이 고요하면 당신도 고요히 있어야 한다는 확신이 생긴다. 일상생활을 할 때는 물론 세상 책임을 다할 때조차 당신은 여전히 고요히 있을 수 있다.

크고 작은 문제들은 일어나기 마련이며, 이때 앎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앎은 개인적 마음과 매우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받아들이는 사람이 혼동하기 쉽다. 앎은 거의 대부분 조용히 있으며, 앎이 드러나려면 앎 아닌 다른 것이 작동되어야 한다. 그러나 당신은 아무 일이 없어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비교하고 궁금해한다. 또 혼자서 드라마를 쓰고, 지나간 일을 되씹고, 골치 아픈 문제에 계속 매달려 있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일에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끊임없이 일하고 또 일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결코 끝나지 않는 회의를 계속하는 것과 같다.

개인적 마음은 멈추지 않는 기계와 같다. 당신 내면에 다른 것이 있음을 깨닫기 시작하는 것은 당신이 개인적 마음과는 다른 곳에 갔을 때뿐이다. 이때도 개인적 마음은 계속 돌아갈 수 있지만, 당신이 간 곳은 매우 다른 형태의 마음이다. 이것은 중요한 발견이며, 서서히 올 것이다. 왜냐하면 개인적 마음에서 살다가 앎의 마음으로 옮겨 가는 일은 삶의 관점, 자신의 정체성, 세상활동과 관계의 기반이 모두 달라질 만큼 완벽하고도 철저한 전환이기 때문이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당신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먼저, 당신이 해결하려는 문제는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큰 문제, 중간 문제, 작은 문제가 있다. 작은 문제를 해결할 때는 앎이 당신에게 어쩌다가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대체로 그리하지 않는다. 그래서 작은 문제들은 당신이 해결해야 한다.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보통 훨씬 쉽지만, 흔히들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드러난 문제에 불평으로 대하기 때문에 작은 문제가 매우 커 보일 수 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선하기보다는 곧잘 짜증부터 내고 투덜거리며 혼란에 빠져 문제 해결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쓴다. 이것은 작은 문제에 크게 반응한 것이다.

이때 문제가 문제를 낳는다. 작은 문제에 크게 반응하고, 큰 문제에 작게 반응한다. 바로 이것이 큰 문제다. 차 열쇠를 분실했거나, 타이어에 구멍이 났거나, 어떤 실수를 범했거나, 어떤 일을 소홀했거나, 무언가를 깜빡했거나, 어떤 기계에 고장이 났거나, 이런 것들은 모두 작은 문제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통 여기에 크게 반응한다. 크게 반응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를 키우는 원인 중 하나다. 그래서 문제가 크든 작든, 또 문제의 성격이 어떠하든, 문제 해결에 바로 들어가기보다는, 먼저 앎이 다루는 문제와 당신이 다루는 문제가 어떤 점에서 다른지 그 차이점부터 알아보자.

돈을 더 벌려고 하는 일은 항상 작은 문제다.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돈을 벌든, 호화스럽게 살려고 돈을 벌든, 작기는 마찬가지다. 당신 에너지의 98%를 돈 버는 일에 쓰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돈 버는 일은 여전히 작은 문제다. 해결책을 얻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지라도 여전히 작은 문제다.

사람들이 해결하려 하거나 피하고 싶은 문제들 대부분이 작은 문제들로 이루어졌다. 어떤 문제가 됐든 문제에 대응하는 길은 셋뿐이다. 먼저, 문제를 회피할 수 있다. 사람들은 문제를 회피하는 데 머리가 아주 잘 돌아가기 때문에 여기에는 방법이 많다. 그다음으로 문제를 불평할 수 있다. 불평은 회피할 수 없으므로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아직 문제 해결에 전념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불평한다. 마지막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두 가지 대응책은 작은 문제에 크게 반응한 것으로 문제를 회피하거나 불평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쓴다.

이때 작은 문제가 커지며, 이처럼 작은 문제를 소홀히 다루어 커진 것이 중간 문제가 된다. 회피하거나 해결하지 않음으로써 문제는 더 골칫거리가 되고 어려워지며, 때로는 더 많은 비용을 치르게 된다. 작은 문제는 중간 문제까지만 될 수 있다. 큰 문제는 다른 것이다.

문제를 너무 오랫동안 방치하면 문제가 커지지만, 작은 문제는 속성상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가 커졌다는 뜻은 작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거나 작은 문제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는 말이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커지지만, 그렇다고 작은 문제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단지 처음에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커졌을 뿐이다.

큰 문제란 사람들이 앎에 응답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앎은 깃발을 흔들고, 방향을 가리켜주며, 당신에게 경고하기 위해 모든 일을 하지만, 당신은 알아채지 못하거나 피하려고만 한다. 이것이 큰 문제다. 사람들이 삶에 응답하는 것을 보면, 삶과 동떨어져 어떻게 하든 자신의 야심만을 이루려고 돌진한다. 이것이 큰 문제며, 작은 문제도 대부분 여기에서 생긴다.

그러니 일반적인 문제들을 좀 더 이야기한 다음, 작은 문제와 중간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알아보고, 그러고 나서 큰 문제를 알아보자. 먼저, 문제 없이 살려고 하지 말라. 이것은 슬기로운 생각이 아니다. 당신은 물질계에서 살고 있으니, 해결해야 할 실생활 문제들이 많다. 또한 삶과 분리된 개인적 마음을 가졌고, 앎과 완전히 결합된 것이 아니니, 당연히 문제들이 많다. 문제 없이 살려고 하거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재미있게 놀려고만 하면, 문제를 키우거나 큰 문제인 것처럼 부풀리기 쉽다. 앎은 항상 문제를 해결하지만, 중간 문제와 큰 문제만을 해결한다. 왜냐하면 작은 문제는 개인적 마음이 해결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상식을 가지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를 닦지 않으면 나중에 충치가 생겨 아주 성가시게 된다. 이것이 상식이고, 상식은 가장 초보 수준의 앎과 같은 것으로 유치원 앎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일이 아주 분명하거나 계속 반복해서 일어날 때 생기는 앎이다. 고지서 요금을 제때 내지 않으면 손해를 볼 것이고, 거짓말을 하면 나중에 곤란한 일이 생길 것이다. 이것이 상식이고 유치원 앎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사람들 대부분이 아는 일이지만, 그 순간 잠깐 그렇게 하기가 불편하다거나 돈이 좀 든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또, 약간 불편한 일을 다루어야 하거나 일상생활에서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냥 방치해 둔다.

지금까지 말한 것을 간단히 요약해보면, 당신은 문제를 가질 수밖에 없고, 그 문제에는 세 가지 수준이 있으니, 문제마다 이 셋 중 하나에 속할 것이다. 작은 문제란 당신이 물질 우주에서 살고 있으므로 일어나는 것들이다. 중간 문제란 작은 문제를 돌보지 않아서 일어나는 것이다. 큰 문제란 당신이 앎과 분리되어, 결국 살아 있는 다른 모든 것과 분리된 것을 말한다. 누구나 이런 처지에 놓여 있으므로 문제 해결을 배우는 일은 누구에게나 당연히 중요하다.

작은 문제들은 대부분 개인적 마음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 말은 작은 문제가 쉽다는 뜻이 아니라, 단순히 개인적 마음으로 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차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물론 귀찮을 수는 있지만, 결코 큰 문제는 아니다. 이런 일이 삶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일로 명상해야 하는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당신은 상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당신이 차 열쇠를 잃어버렸을 때, 어떤 때는 금방 어디 있는지 머리에 떠오를 수도 있지만, 어떤 때는 온 집안을 샅샅이 뒤져야 할 수도 있다. 이것이 작은 문제다. 당신은 이런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또 해결하고 계속 반복해서 해결해 봄으로써 물질계에서 훨씬 더 효과적으로 능숙하게 살아갈 것이다.

교육은 대부분 문제 해결을 배우는 일이다. 그런데 왜 문제를 없는 것으로 만들어 편해지려고만 하는가? 이것은 교육받고 싶지 않다는 말과 같다. 당신이 작은 문제를 회피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바로 돌본다면, 그렇게 많은 시간을 거기에 쏟지 않아도 되며, 오히려 문제 해결을 통해 실생활을 더욱 잘 알 수 있게 되고 더욱 성실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된다. 그리하여 당신은 삶의 큰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큰 문제는 보통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나는 여기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가?”, “어떻게 하면 나는 내 안의 깊은 마음과 재결합할 수 있는가?” 이 모두가 같은 의문이지만,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물어볼 수 있다. 큰 문제는 이처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해볼 수 있다. 사실상, 큰 문제는 사람들이 매우 다른 방식으로 보고 매우 다르게 해석할 만큼 대단히 크다. 마치 거대한 것을 볼 때 한꺼번에 다 볼 수는 없고 일부만을 볼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쪽에서 이쪽 면을 보고 어떤 사람은 저쪽에서 저쪽 면을 본다. 만약 그들이 서로 대화를 나눈다면, 각자 보는 것이 완전히 달라 보일 것이다. 그리하여 큰 문제가 어떤 사람에게는 영적 자각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것이 되며, 어떤 사람에게는 관계에서 분별력을 갖는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은 모두 같은 문제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고 체험한 것이다. 이것을 큰 문제라 한다. 당신이 비록 작은 문제를 모두 해결하여 삶이 평탄하다 할지라도, 큰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결코 평안을 얻지 못할 것이며 작은 문제들에 계속 매이게 될 것이다.

세상을 이상적으로 순수하게 살아간다면, 중간 문제는 없고, 오직 작은 문제와 큰 문제만 있게 되며, 작은 문제는 대부분 상식으로 해결된다. 당신이 작은 문제를 소홀하거나 피하거나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 그 문제가 중간 문제로 된다. 그러면 이때 앎이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이를테면 당신이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할 필요를 느꼈는데, “지금은 병원 갈 형편이 안 되니, 달리 방법을 찾아봐야겠어.”라고 말하고 그 신호를 무시하면, 결국 문제가 커져 중간 문제로 된다. 그러면 앎이 당신을 부추겨 무언가를 하도록 할 것이고, 당신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내면 깊숙한 곳에서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앎은 왜 일상생활 문제들에 좀 더 깊이 관여하지 않는가? 심지어 제법 심각해 보이는 문제까지도 왜 가만 놓아두는가? 왜냐하면 앎은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있기 때문이다. 큰 문제는 매우 커서 당신 삶 모든 부분에 영향을 준다. 당신이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하면, 당신 삶은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간다. 이때도 작은 문제는 계속 생기겠지만, 그냥 작은 문제로만 남아있을 것이다.

문제들이 해결되고 나면 그 자리에 무엇이 남는가? 바로 자유다. 작은 문제들을 여전히 크게 보고 어떻게 할지 계속 따지기만 하면서 거기에 당신 에너지를 모두 써버린다면, 당신은 자유를 얻을 수 없다. 자유란 무엇인가? 내면에 있는 진리에 응답하여 그 진리를 따르는 것이 바로 자유다. 당신이 자유로울 때, 이것이 가능하고, 큰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며, 당신이 세상에서 자신의 가치와 목적을 체험할 수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자신을 자연스럽게 사랑하게 된다. 자신을 사랑할 때 사람들과 관계가 바르게 정립된다. 이것이 자유다. 사람들은 하고 싶은 것을 별로 방해받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방해받지 않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자유는 아니다. 정치적으로 자유국가에서 사는 사람과 독재국가에서 사는 사람을 비교해보라. 자유국가 사람이 유리하고 기회도 많겠지만, 독재국가 사람보다 더 효과적으로 삶의 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작은 문제들이 서로 다를 뿐이다.

앎은 큰 문제를 해결하며, 작은 문제는 당신이 그 수준에 맞게 해결할 수 있도록 당신에게 맡겨둔다는 점을 명심하라. 이 점을 오해하면 불필요한 작은 문제들이 생겨날 것이다. 말하자면, 문제 해결은 문제가 발생한 수준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큰 문제가 있으니, 작은 문제를 쉽게 큰 문제와 연관 지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열쇠를 잃었다고 치자. 온 집안을 마구 헤집고 나서도 결국 못 찾으면, “이 일이 영적으로 나에게 대단히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혹은, “이것이 나의 심리 특성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마음속에 온갖 추측이 난무하기 시작한다. 작은 문제는 이때 커지기 시작하며, 당신은 완전히 여기에 휘말리게 된다. 당신은 여전히 열쇠를 찾지 못했다. 열쇠는 당신이 찾아주기만을 기다리며 어딘가에 있지만, 당신 마음은 딴 데 정신을 팔고 있다.

사람들이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자신의 성장에 열을 올릴 때, 종종 상황을 엄청나게 과장하는 수가 있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나 자신이 느끼는 일에 모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문제들이 모두 큰 진리를 나타내거나 삶의 큰 장애로 보인다. 열쇠를 잃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 됐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현자도 열쇠를 잃어버리며, 병들고 죽는다. 현자들이 다른 점은 단지 앎을 체험하는 데 있고, 자신의 에너지를 어디에 쏟느냐에 있다. 세상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문제들 대부분은 작은 문제가 커진 것들이다. 작은 문제들을 소홀히 다루었거나 아니면 거기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앎은 큰일을 하지만, 작은 일도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지켜본다. 그래서 당신이 열쇠를 잃어버리고 앎에게 가서, “열쇠가 어디 있는가? 지금부터 나는 명상하겠다.”라고 말하면, 어떤 곳을 찾아보도록 당신 마음속에 떠오르는 때가 있다. 그럼 당신은 “대단해. 앎은 참으로 훌륭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집중해서 명상해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결국 온 집안을 뒤져야 하는 때도 있다. 그러면 그때 당신은 “음~, 앎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 같은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앎은 이런 일들보다 훨씬 큰일을 한다.

큰공동체 앎길을 처음 공부할 때 사람들은 흔히 “이것을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돈을 어떻게 더 벌 수 있는가? 진짜 사랑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이 고통과 아픔을 어떻게 몰아낼 수 있는가?” 등등 끝도 없이 해대는 질문으로 자신을 괴롭힌다. 이때 내면에서 아무 응답이 없으면, “앎에 답을 얻기에는 내가 너무 어리석거나, 아니면 앎이 존재하지 않는지도 몰라.”라고 말한다. 앎은 이런 질문들보다 훨씬 더 큰일을 한다. 마치 과학자가 중요한 발견을 위해 일하는 것과 비슷하다.

당신에게 있는 문제 90%정도는 당신이 해결해야 한다. 수완을 발휘하고, 도움을 구하며, 일하는 법을 배우라. 이것이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당신이 배워야 할 교육이다. 문제들을 받아들여 어떻게 처리하는지 배우고 또 해결함으로써 당신은 인간으로서 성숙하게 된다. 그러나 일을 중간 문제로 키우지는 말라. 그러면 시간과 에너지를 뺏기는 것은 물론 삶의 초점을 잃게 될 것이다.

자, 그럼 이제부터 큰 문제에 관해 이야기해보겠다. 큰 문제는 매우 크기 때문에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당신이 작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충분히 배워 문제가 일어나는 대로 처리해 나갈 수 있다면, 새로운 경계를 넘어 훨씬 큰 차원의 삶으로 들어갈 것이다. 이때 큰 문제가 드러나고, 당신이 삶의 큰 답을 찾지 않았다면 얻지 못할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취가 있다. 또한 그 성취와 함께, 당신이 세상에 봉사하기 위해 가져온 것이 모두 여기 있다. 앎이 있고 의미가 있다. 당신이 진짜 누구인지, 왜 일을 지금처럼 처리하는지 그 안에 숨겨진 의미가 여기 있다. 이때는 작은 문제들보다 그 문제들을 담고 있는 전체 상황을 더 중시한다. 전체 상황이 바뀌면 그와 함께 모든 것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작은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며, 단지 적어지고 좀 더 재미있게 보일 뿐이다. 이 차원에 들어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러나 이것이 성장이다.

큰공동체에서는 지능을 가지고 대부분 경쟁한다. 지능은 문제를 해결해봄으로써 개인들이 자신의 삶에서 개발하기도 하고, 종족들이 각기 몇 세대를 걸쳐 개발하기도 한다. 작은 문제는 물론 큰 문제까지 여기에 포함된다. 앎은 큰 문제를 다루므로 이때 앎이 관여한다. 앎은 중간 문제를 해결할 때도 당신을 안내한다. 그러나 작은 문제일 경우, 앎은 당신에게, “가서 해결하라. 가서 해결하라.”라고 말하며 당신이 직접 해결하도록 한다. 사람들은 보통 이때 앎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에게는 작은 문제가 매우 커 보인다. 그래서 그 문제들을 해결해 달라고 앎에게 간청하지만, 앎은 “가서 해결하라.”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들은 “내가 해결하기에는 문제가 너무 크고 너무 어렵다.”라고 말하지만, 앎은 여전히 “가서 해결하라.”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작은 문제를 엄청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서 앎을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이 작은 문제 대부분을 해결하고 나면 거기에 남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공허감이다. 공허감은 삶의 신비에 초대장이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 해결할 문제가 없으면, 사람들은 좌절하게 되고, 불안감이 들기 시작하며, 공허감이 찾아든다.

큰 문제 영역으로 들어오면, 당신은 앎과 함께 일하며 앎을 따른다. 큰 문제에 관련되어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난관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앎이 당신에게 모두 가르쳐준다. 바로잡아야 할 생각이나 정서 생활이 있으면, 이때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준다. 앎과 함께 일할 때, 당신은 앎이 주는 위대함을 받는다. 앎이 주는 침묵과 신비, 앎이 주는 분별력과 평화를 받는다.

사람이 현명해질수록 작은 문제들은 점점 줄어들고, 앎과 결합할 수 있도록 공허감이라는 보물은 더 커진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작은 문제와 중간 문제들에 꼼짝 못하고 매이게 된다. 그래서 앎길을 따를 때 맨 먼저 하는 일이 종종 작은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배우는 것이다. 그래야 당신이 큰일을 해나가는 데 자유롭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그 작은 문제들을 당신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의 도움을 구할 수도 있지만, 결국 당신이 해야 한다. 당신이 작은 문제를 소홀히 다루는 일 없이 중간 문제도 떠맡을 때, 그리하여 이 경계를 넘어서 삶의 신비로 들어갈 때, 당신은 큰 문제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때 앎이 당신에게 매우 실질적인 것이 된다. 당신이 고집스럽게 큰 문제 영역에 있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앎의 위대성을 감지하고 앎의 의도를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전에는 앎이란 좀 이상하고 호기심이 가는 개념이기는 해도, 막상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물론 이때 문제란 당신에게 큰 문제로 보였던 작은 문제들을 말한다.

이것을 다르게 말해볼 수도 있다. 당신이 작은 문제를 능률적으로 해결하여 지금 처리해야 할 문제가 별로 없고, 또 생기면 생기는 대로 바로 처리할 줄 안다면, 당신은 삶의 다른 영역, 삶의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때 앎의 초보학생으로서 문제를 보기 시작한다. 앎의 상급생은 대체로 물질계 차원에 있지 않으니, 세상에 있는 당신들은 거의 모두가 초보학생에 해당한다. 그러니 초보학생이 된 것에 기뻐하라. 초보학생들에게는 문제가 있다. 초보학생은 작은 문제를 크게 생각하고, 큰 문제를 작게 생각하거나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신이 자신을 위해 개입하거나 조언해주기를 바란다. 그들은 지혜를 구하지만, 그릇되게 문제를 평가하므로 완전히 잘못된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래서 쉽게 오해하고 혼란스러워하고 불안해하고 분노한다. 초보학생들은 잘못 이해한다. 그래서 앎이 자신을 찾아와 도와주고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생각한다. 심지어 상식조차도 종종 통하지 않는다. 상식적인 일조차 할 수 없다면, 무엇 때문에 큰 것을 구한단 말인가?

이 점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만한 소재가 많다. 예를 들어, 자신에게 영적 삶이 있다고 여기고 영적 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할 때, 자신이 바른 일을 하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으로 흔히들 착각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모든 문이 열려 어려움이 없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어떤 일이 어려워지면, 자신의 접근방법에 무언가가 잘못됐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다. 당신이 바른 일을 하면, 어떤 때는 일이 매우 순조롭고 잘 풀리지만, 어떤 때는 많은 장애가 생겨 일이 어려워지고 그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힘들게 일해야 한다. 반대로 당신이 그른 일을 하면, 어떤 때는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잘못된 것을 깨달을 때까지는 쉬워 보인다. 또 어떤 때는 일이 어렵고, 극복해야 할 장애나 극복할 수 없는 장애가 엄청나게 많다. 그러니 겉으로 드러난 것에 속지 말라. 어떤 것이 어렵고 문제투성이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당신이 잘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당신이 바른 길로 가면, 때로는 매우 쉽겠지만, 때로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릇된 길로 가면, 때로는 쉬워 보이겠지만, 항상 어렵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혜를 얻으려면, 작은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수준에서 해결하는 법을 배워 중간 문제나 만성적인 문제로 커지지 않도록 하라. 작은 문제를 작은 것으로 보되, 소홀히 다루지 않도록 하라. 그러면 당신은 삶의 진짜 문제를 다루기 시작할 수 있다. 이때 당신이 자아실현의 길, 공헌의 길을 따를 수 있다. 작은 문제와 큰 문제, 모두가 필요하며, 어느 한 쪽만 독단으로 있을 수 없다. 당신이 영적 삶으로 깊이 들어간 채, 납부 고지서를 방치하거나 열쇠를 어디 두었는지 잊어버리거나 건강을 적절히 돌보지 않는다면, 당신은 많은 어려움을 맞이하여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양쪽 문제 모두 소홀히 다루지 말라. 작은 문제는 당신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마다 피하지 않고 곧장 처리해 나가면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큰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질 것이다.

당신이 큰 문제에 이르게 되면, 어떤 틀 안에도 이 문제를 집어넣을 수 없어 당신의 시각이 계속 바뀔 수밖에 없음을 깨달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 내면에도 있고 세상 속에도 있는 큰 힘을 점점 더 따르게 될 것이다. 이때 당신은 단순히 큰 힘의 수혜자가 되기보다는 협조자가 되어야 한다. 큰 문제는 곧장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당신이 의식적이고 효과적으로 이 문제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때, 해답을 어떻게 따르는지 알게 된다. 큰 문제에서는 당신이 벗어날 수 없다. 해답을 따르든가 아니면 해결되지 않는 채로 살아야 한다. 그러니 당신은 큰 문제와 항상 함께 있다. 큰 문제는 당신을 기다리며 항상 당신 곁에 있다.

당신이 앎길을 따라 계속 가다 보면, 이전에 내린 결론이나 가정, 믿음 등은 대부분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가 빈 공간으로 열리게 된다. 열린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 열려 있다. 즉, 당신이 마음을 열어놓고 상황을 주의 깊게 관찰하며 앎에 응답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당신은 불평하는 것으로 문제를 회피할 수도 있지만, 되도록 그리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불평하면 해결할 수 있는 일도 해결할 수 없게 된다. 당신이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작은 문제고, 혼자 해결할 수 없는 것은 큰 문제다.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때때로 앎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큰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전적으로 앎이 필요하다. 앎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당신이 앎과 결합해야 한다. 당신이 앎과 하나가 되어 앎이 앞장서 당신을 가르치고 준비시켜야 한다. 이때 당신은 마음과 영성이 하나로 어우러진 삶을 살게 된다. 그러면 당신은 분리된 자에서 한 인간으로 완전히 탈바꿈하여 큰 문제와 함께 살아갈 수 있고, 그 해답과 더불어 살 수 있다.

당신이 이렇게 탈바꿈하여도 보통 사람 눈에는 달라 보이는 것이 전혀 없을 것이다. 당신은 여전히 열쇠를 찾아야 하고, 차를 수리해야 하며, 몸이 아프면 돌보아야 하고,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같아 보이는 것은 여기까지다. 왜냐하면 이때 당신은 다른 마음을 가진 다른 삶, 비교될 만한 것이 전혀 없을 만큼 전혀 다른 우주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당신에게 가능하다. 그러니 이제부터 당신 삶에 작은 문제가 생기면 생기는 대로 받아들이라. 필요하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그 문제들을 제때 해결하여, 되도록 최소화하라. 그래서 당신을 부르는 큰 문제에 응답할 수 있게 하라. 지금 큰 문제가 당신을 기다리며,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보상과 함께 그 해답 또한 당신을 기다린다. 이때 당신은 자신을 어떻게 도울지 알게 된다. 당신은 자신이 왜 특정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그 특성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특성도 알게 되며, 그들과 당신이 어떤 점이 비슷하고 어떤 점이 다른지도 알게 된다. 또한 당신 내면에 있는 힘을 깨닫게 되며, 우선순위가 바뀌어 큰일들을 구하기 시작한다. 당신은 큰일에 접근하려고 큰 힘을 구할 것이다. 왜냐하면 큰일은 큰 힘과 함께했을 때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 삶의 큰 문제를 받아들이라. 작은 문제들을 소홀히 다루지 말라. 그래야 당신이 문을 열 것이다. 그 문은 이미 열린 상태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